노트 26: 주권이라는 오류에 대하여

대륙이 조정 기록에 대해 주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서로 직접 연결된 별개의 플랫폼에서 세 명의 사무원이 내용이 일치하는 파란 기록부를 관리하는 모습을 그린 개념도.

주권은 감정이나 구호, 서사가 아니다. 구조적 속성이다. 집행력과 최종 권한이 없는 곳에는 주권도 없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이미지 포장이다.

‘아프리카의 디지털 주권’은 이 단계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대륙은 주권 주체가 아니다. 법률과 정치, 유인이 서로 양립하지 않는 54개 독립국이 하나의 권위를 이루지는 않는다. 통일된 관할권도, 공동의 집행력도, 정당성을 갖춘 최종 의사 결정자도 없다. 주권이라고 제시되는 것은 실제로는 주권을 흉내 내려는 시도다.

이 모순은 등록 계층에서 드러난다. IP 주소와 ASN은 추상적인 기호가 아니다.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만 존재하는 조율의 기록이다. 인터넷이 작동하는 것은 누군가 통제를 강제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그럴 필요가 없어서다. 등록 권한을 정치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 순간 이미 시스템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 인터넷 등록기관들은 이러한 오해를 증폭시킨다. 등록기관이 자국에 없는 국가들은 거리를 주권 상실로 착각한다. 등록기관이 자국에 있는 국가들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통제권으로 착각한다. 둘 다 틀렸다. 등록기관이 소재한 국가는 국경을 넘어 번지는 분쟁과 압력을 떠안으며 필연적으로 법적·정치적 병목이 된다. 등록기관이 소재하지 않은 국가들은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결정에 계속 노출된다. 어느 쪽이든 등록기관은 더 이상 중립적인 조율 장치가 아니라 대리 갈등의 전장이 된다.

더 깊은 오류는 개념 자체에 있다. 중앙화된 등록기관은 통제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부추기고, 그 믿음은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낳는다. 그 시도가 시작되면 인터넷의 자발적 성격은 무너진다. 소송, 제재, 동결, 거버넌스의 마비가 뒤따른다. 이는 남용이 아니라 협력하는 시스템을 지배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한 데서 나오는 논리적 결과다.

그래서 권한의 소재지를 옮기거나 ‘거버넌스를 고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등록 계층 자체를 정치의 중력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완전히 분산된 원장만이 인터넷을 작동하게 했던 원래 조건을 보존한다. 강제 없는 조율, 관할권 없는 인정, 통치자 없는 질서다.

디지털 주권은 통제권을 주장해서 되찾는 것이 아니다. 통제가 애초에 존재해야 한다는 환상을 없앰으로써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