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24: 반론 — 그리고 그것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
분권화에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사례는 무엇이며, 그것이 실패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내 주장에는 진지하게 다뤄야 할 반론이 있다.
희화화할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제시할 가치가 있다.
그들은 IP 주소가 자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운영을 위한 공유 자원이라는 것이다.
투기와 사재기, 불평등을 막으려면 행정적으로 할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시장이 보상하는 것은 연결성이 아니라 돈이다.
그들은 정당성이 ‘커뮤니티 거버넌스’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효율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결과가 불완전하더라도 참여 자체가 권위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 중복이 없는 고유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중앙의 조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등록기관.
하나의 기준 정보원.
지나친 탈중앙화는 분열, 남용, 라우팅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또 법원과 시장을 통해 변화를 강제하면 붕괴가 가속화된다고 주장한다.
압력은 천천히 흡수해야 한다고 한다.
급격한 단절은 정부의 통제권 인수, 제재, 정부 간 통제를 불러온다고 한다.
요컨대 진단은 맞을지 몰라도 방법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가장 강력한 논거다.
그래도 성립하지 않는다.
첫 번째 오류는 정당성과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혼동한다는 점이다.
참여자가 나이 들어 가는 소수의 자발적 참여 집단으로 쪼그라들면 개방된 참여만으로는 규모를 감당할 수 없다.
절차는 서류상 정당하더라도 실제 압력 아래에서는 실패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역사는 가차 없다.
두 번째 오류는 조율에 중앙화가 필요하다는 가정이다.
역사적으로 틀린 가정이다.
인터넷은 이미 네트워크 계층에서 중앙 통제 없이 전 세계적인 조율을 실현했다.
위험이 드러났을 때 같은 논리가 자원 계층에는 왜 적용될 수 없는지 그들은 한 번도 설명하지 않는다.
세 번째 오류는 지정학이 이미 무너뜨린 신뢰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제재는 현실이다.
법원이 명령하는 동결도 현실이다.
특정 관할권에 의한 장악도 현실이다.
그들의 모델은 서로를 공공연히 적대자로 대하는 국가들 사이에 영구적인 선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거버넌스가 아니다.
희망 사항일 뿐이다.
네 번째 오류는 믿을 만한 최종 상태가 없다는 점이다.
희소성에 대한 그들의 답은 더 나은 행동이다.
더 나은 규범이다.
더 많은 인내심이다.
당신이 내놓는 답은 사람들이 제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도 작동해야 한다.
여기서 비교는 결정적이 된다.
그들의 모델은 모두가 바르게 행동할 때만 작동한다.
내 모델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작동한다.
그들에게는 신뢰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자제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이중화가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합의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이동 가능성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도덕적 입장의 일치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역사는 언제나 두 번째 묶음을 선택한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제약 조건의 문제다.
국가들은 서로 합의할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의 기능 상실을 감당할 수도 없다.
경쟁하는 강대국 사이의 영구적인 신뢰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결국 무너진다.
유인과 권리, 이중화를 중심으로 설계한 시스템은 살아남는다.
그래서 이 전환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은 아무리 좋은 뜻에서 나왔더라도 성립할 수 없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시스템을 옹호한다.
‘부디 권력을 쓰지 말아 주세요.’
내가 설명하는 시스템은 이렇게 말한다.
‘권력은 존재한다. 그러니 그 존재를 전제로 설계하라.’
역사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둘 중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