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47: 거짓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청과물 상인의 슬로건은 계속해서 신념을 실천하는 기관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채소 가게 쇼윈도에서 가게 주인이 아무 글씨도 없는 파란 팻말을 들고 있는 개념적 미니어처. 밖으로는 손님들과 시장 가판대가 보인다.

체코의 작가이자 전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은 『힘없는 자들의 힘』에서 간단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채소 가게 점장이 쇼윈도에 다음과 같은 팻말을 내건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가 그곳에 구호를 내거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체제가 그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떼어 내면 골칫거리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 팻말은 설득이 아니다. 의례다. 대다수가 믿지 않는데도 모두가 믿는다는 외관을 유지한다.

이것이 인터넷 거버넌스 세계의 특정한 제도적 의례와 얼마나 닮았는지 알아차리지 않기란 어렵다.

등록기관 회의가 열린다.
투표가 진행된다.
성명이 발표된다.

그 회의실 안에서는 비교적 작은 집단이 전 세계 인터넷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듯이 말한다. 그러나 회의실 밖에서 실제로 인터넷을 운영하는 네트워크들은 이미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의례는 계속된다.
믿음은 그렇지 않다.

작은 기관 집단은 서로에게 정당성의 언어를 반복하며, 더는 자신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세계를 여전히 통치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닫힌 순환이 만들어진다. 근저의 현실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데도 절차와 회의, 선언으로 유지되는 거품이다.

체제가 살아남는 것은 그것이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연기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202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마크 카니는 이 이야기를 다시 인용했다. 요지는 간단했다. 기관들이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서사를 계속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질서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거짓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쇠하는 모든 체제는 결국 같은 순간에 이른다. 의례는 계속되지만 믿음은 이미 사라진 순간이다.

인터넷 등록 구조는 그 지점에 도달했다.

수년 동안 같은 구호가 반복되어 왔다.

“수탁 관리.”
“공동체 거버넌스.”
“전 세계 자원의 보호.”

채소 가게의 팻말처럼 이 말들은 설명이 아니라 의례가 되었다. 정당성이 있다는 외관을 유지하기 위해 내걸린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간단한 질문을 해 보자.

대형 인프라 기업들이 IPv4 주소를 사들이는 데 수십억 달러를 쓸 때, 그 주소가 “공동체에 속한다”고 믿는가?

운영자들이 주소를 사고 빌리며 재무상태표의 자산으로 관리하고, 네트워크가 계속 가동되도록 그 주소에 의존할 때, 이를 선의의 수탁 관리자가 관리하는 공동체의 토큰으로 취급하는가?

아니면 사유재산으로 취급하는가?

답은 명백하다.

시장은 연설보다 훨씬 더 정직하게 믿음을 드러낸다.

자본은 이념에 따라 투입되지 않는다.
소유권과 권리의 집행 가능성에 따라 투입된다.

운영자 공동체는 이미 수십 년 동안 IPv4 주소가 재산인 것처럼 행동해 왔다.

네트워크들은 주소를 산다.
네트워크들은 주소를 빌린다.
네트워크들은 주소를 지킨다.
네트워크들은 주소를 자산으로 기록한다.

경제적 현실은 수년 전에 이미 확정되었다.

낡은 서사가 아직도 통하는 곳은 등록 체제 자체를 둘러싼 비교적 작은 제도적·문화적 집단뿐이다. 그 안에서는 의례가 계속된다. 그 안에서는 구호가 여전히 쇼윈도에 걸려 있다.

그 밖에서는 모두가 진실을 이해한다.

기업들이 이 이야기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어떤 기업은 정치적으로 신중하기 때문에, 어떤 기업은 제도적 관행 때문에 그러지 않는다. 그저 당장 정면으로 맞설 필요가 없었던 기업도 있다.

그러나 믿지 않는 태도는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다.

운영자들은 구호가 아니라 시장에 따라 행동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보는 대립은 불가피했다.

등록 체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권위라는 환상에 의존했다. 사람들은 그 구조가 결코 진지한 시험대에 오를 수 없다고 여겼기에 체제가 살아남았다.

그러나 제약 대신 서사 위에 세워진 체제는 치명적인 순간을 맞는다.

피를 흘리는 순간이다.

신화에서 신은 피를 흘릴 수 없다. 신이 피를 흘리는 순간, 모두가 그것이 애초에 신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등록 질서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같은 환상에 의존했다.

한번 시험대에 오르자, 법적 검토와 자본시장, 운영 현실이 내부 모순과 충돌하자, 그 환상은 끝났다.

체제는 피를 흘렸다.

그리고 체제가 한번 피를 흘리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다.

공식 성명이 얼마나 많이 발표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절차상의 승리가 얼마나 많이 선언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낡은 구호가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의례는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은 돌아올 수 없다.

운영자 공동체는 이미 다음 단계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가동하는 네트워크들은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경제 계층은 이미 재산권과 시장 배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등록 체제 자체도 이를 안다.

그래서 그 행동은 역사상 쇠퇴하는 모든 제도적 질서의 행동과 점점 더 닮아 간다. 규칙을 조이고, 서사를 방어하고, 언사의 수위를 높이고, 권위를 강화한다.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한 기관들의 마지막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런 체제의 붕괴는 극적인 전복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조용한 이동을 통해 찾아온다.

사람들은 믿기를 멈춘다.
사람들은 의존하기를 멈춘다.
사람들은 다른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

채소 가게 점장은 결국 쇼윈도의 구호가 체제를 지킨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보는 순간을 늦추었을 뿐이다.

이제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숨겨도 피는 이미 흘렀다.

그리고 신이 피를 흘리면 이야기는 이미 끝난 것이다.